어느 낮의 대화
저는 오해를 많이 사는 편이에요.
여자는 말했다.
그래서 손해를 보며 살았던 것 같기도 하고, 크게 상관없었던 것 같기도 해요.
가끔 했던 생각인데, 그건 아마 제가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말과 같은 뜻인 것 같아요.
여자는 그 말이 부끄러운 듯 살짝 미소 지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걸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거겠죠.
어딘가 약간 비틀린 구석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오해 살만한 표현을 써버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어… 작년에요, 친구가 열심히 보던 드라마가 있었는데, 예고편만 얼핏 봐서는 재미를 알 수 없어서 물어봤어요. 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뭐냐고. 그랬더니 짧게 당황하다가 그냥 보는 거래요. 그러고 조금 시간이 지났죠? 우연히 그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는데 재밌더라고요. 귀여웠어, 주인공들이. 친구와 그 이야기를 하려고 말을 꺼냈어요. 나 그 드라마 완전 열심히 보고 있어. 그랬더니 친구가 놀리듯이 이래요, 뭐 이런 걸 보냐 하더니 푹 빠졌냐고. 그제야 알았어요. 아, 그래서 그때 당황한 듯 보였구나. 이번엔 제가 당황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이유를 알고 싶었던 거라 했더니 전혀 몰랐대요. 다시 생각해보면 그 친구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시선을 아래로 두고 짧은 침묵.
아니면 지나치게 솔직해서 다른 사람들을 자극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자기들이 애써 부정하고 싶은 모습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말로 옮겨버리는?
음… 이를테면 출국 전날 구청 앞에서 급하게 찍은 여권용 증명사진 같은 거요. 분명 내 얼굴인데 내가 늘 보는 얼굴보다 훨씬 못생겨서 이 얼굴이 날 몇 년간 증명할 생각을 하면 아찔해지는. 내 얼굴이야, 그래 내 얼굴은 맞는데,
그 말에 바보 같은 내 주민등록증 사진이 떠올라 피식 웃었고 여자도 따라 웃었다.
아…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또 오해 할 수도 있는데, 제가 본질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이나 대단한 직관력을 가졌다는 말은 아니에요. 그런 ‘느낌’을 준다는 거죠. 마치 핵심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요.
발끈하거든요, 상대방이. 자기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발끈하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뜨끔한 구석이 있는 거겠지. 우연이라면 우연일 수 있고, 대부분의 사람이 숨기고 싶어 하는 모습은 보편성을 지녔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그것도 아니라면, 제 잘못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은 보상작용 같은 걸지도 몰라요. 아이, 모르겠다. 방금 했던 말들은 적지 마세요.